임철우 『봄날』의 재현형식에 관한 연구

Abstract

본고의 목적은 임철우 『봄날』의 재현 형식을 연구하는데 있다.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봄날』은 5.18을 총체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기록의 집적이 아니다. 오히려 『봄날』은 5.18이라는 사건을 감각 인상적으로 체험하게 하려 한 소설이자 5.18이라는 사건성의 의미론적 차원을 끝없이 증식시키려 한 소설이다. 이 모든 것을 『봄날』의 형식이 가능케 한다. 『봄날』의 서사는 동적인 장면이나 광경 위주로 진행되고 세세하고 촘촘한 극사실주의적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뭣보다 감각 인상적으로 채워져 있다. 과도한 묘사는 언제나 독자에게 서사의 총체적인 파악보다 인물들의 움직임 형태, 심리 형태, 공간 배경의 형태 등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고, 사물의 형상이나 사태를 더욱 감각적으로 느끼게 할 비유와 형용사, 부사 역시 내내 다발적으로 출현하여 소설이 보여주는 장면 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처럼 느끼게 한다. 『봄날』의 서사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현현(epiphanic)된다. 게다가 『봄날』은 이미지적 장면들을 설명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의미론적 서술이 적은데 압도적인 묘사로 인해 그 서술마저 침식되어 존재한다. 즉 『봄날』의 서사는 사건에 대한 재현적 서사가 아니라 감각 인상적 차원에서 사건을 감각/인지하게 해주는 서사다. 『봄날』에 그려진 대부분의 장면들은 말 그대로 ‘그려져’ 있다. 『봄날』의 이미지적 서사는 체험적 성격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다. 감각 인상적 장면들은 독자의 정동affect과 정동에 대한 상태적 변이를 보여주는 (감정적/신체적)변용affection을 만들어내며 독자에게 강도强度적 체험을 하게 만든다. 이때 이 강도적=정동적 체험은 의미론적 서술에 의해 포획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살아 날뛰며 증식된다. 『봄날』은 독자의 신체를 미시-운동하게 만든다. 『봄날』에서 의미론적 차원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비슷한 이미지적 서사의 중첩에 있다. 일반적인 소설의 형태에서 구조적 역할을 하는 의미론적인 서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봄날』에서, 일종의 누빔적 역할을 하는 것은 비슷한 내용의 반복뿐이다. 『봄날』은 그 반복 속에서, 하지만 결국 독자의 해석에 의해 나타난 어떤 해석소에 의해 재현적 의미를 갖게 되며 이미지적 서사는 바로 그 이미지적 특징으로 인해 제 정체를 바꿔가며 재현적 의미를 새롭게 생성한다. 해석소는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일종의 구조나 문법을 통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적 서사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이미지적 서사와 내재적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봄날』의 의미론적 차원은 이미지적 특징으로 인해 어떠한 권위도 갖지 못하며, 거꾸로 말해 종결되지 않는다. 『봄날』이 만들어낸 5.18의 재현적 의미는 끝없이 증식된다.